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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이 죽을 때에 영혼은 육신을 떠나서 하느님의 심판을 받고 행실의 선악에 따라 상이나 벌을 받는다. 그리고 사함을 받지 못한 대죄를 지니고 죽은 사람은 지옥에, 또 조그마한 죄도 없이 하느님의 공의에 대한 보상을 다한 사람은 천국에, 또 소죄로 더럽혀졌거나 혹은 사함을 받은 죄의 잠벌을 완전히 기워 갚지 못한 사람은 연옥에 가는 것이다. 연옥은 우리 신앙의 보배로운 한 조목이다. 하느님의 공의, 예지, 전선의 오묘함을 나타내는 진리이다.
[계시]
모든 민족에게 연옥의 사상이 있다. 히브리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인도, 중국, 이집에도 사람은 완전한 행복을 얻기 전에 정화되어야 한다는 신앙이 있었다. 이것은 세상 시초에 인류에게 게시된 초자연적 진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성서]
유다 마카베오는 전사한 병사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은 2천 드라크마를 보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사소한 죄를 가지고 죽은 병사는 정화되는 곳에 있다는 뜻이다. 그곳을 가톨릭 교회에서는 '연옥'이라고 부른다.
위에 소개한 성서의 저자는 덧붙여 말했다.
"그가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2마카 12, 45).
신약 성서에서도 동일한 신앙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이 어던 죄를 짓거나 모독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슬러 모독한 죄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 31).
이 말씀으로 후세에서 죄가 사해지는 곳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장소는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그곳은 연옥이다.
성 바오로는 고린토인에게 보낸 첫째 편지(3, 15)에서 말했다. 이 영혼은 구원되니까 지옥에 넣어졌떤 것은 아니다. 그는 고통 중에 정화되는 연옥 불을 거쳐 간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
성령의 감도하심으로 그르칠 수 없는 성교회는 처음부터 끊임없이 연옥의 존재를 선언하고 있다. 교회의 예식은 연옥의 존재를 단언한다. 사도 시대나 중세기나 또 현대에도 동선남북의 여러 나라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기도는 모두 연옥의 존재를 확인한다.
미사의 거양 성체 후 사제는 하얀 성체를 쳐다보고 자신이 원하는 또는 부탁받은 죽은 이를 기억하여 그들을 위해 잠시 동안 기도한다. 성무 일도에서 각 시간경마다, 즉 적어도 하루에 여덟번 수십만 명의 사제는 "죽은 모든 교우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되풀이하여 연옥에서 고생하고 있는 영혼의 구원을 비는 것이다.
교회의 학자들은 연옥의 존재를 단언하고 있다. 사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에게 물으니 성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열심한 기도,,특히 미사 성제로 저들을 도와 주시오."
사랑하던 이가 죽어 슬퍼하고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어 성 암브로시오는 말했다.
"부디 눈물을 거두시오. 그리고 기도를 더 하십시오. 눈물을 흘리는 것은 괜찮지만 그보다도 당신과 떨어져 있는 귀여운 여동생을 위해 기도드리는 일에 더 유의하시오."
교회는 공의회로 연옥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16세기에 이단자 루터는 연옥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트리텐티 공의회는 다음과 같은 말고 주교들에게 깊이 주의하도록 명하였다.
"성교회는 성령의 감도하심과 성서와 교부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이전의 공의회에서 확정된 연옥의 존재와 거기 있는 영혼은 신자의 기도와 특히 미사 성제로써 도움받음을 믿으며 굳이 지킨다."
또 이단자에게도 공의회는 같은 확정을 다짐하고 무서운 파문으로써 경고하였다.
"은총으로 말미암아 의화된 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금세나 후세 연옥에서 잠벌이 안 남을 정도로 죄가 사해진다고 말하는 자는 파문될 것이다."
또한
"산이, 죽인 이, 죄, 보상, 보속, 그 밖의 필요로 미사 성제를 거행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자는 파문될 것이다."
이상으로 보아도 연옥의 존재는 확실하다.
(이 책이 집필되고 35년 후인, 1999년 가톨릭교회와 루터교는 신구교간 화해선언을 하였다. 글쓴이의 시대정신을 감안하여 읽어주길 바라며, 글쓴이에 대한 비판을 삼가하여 주길 바란다. -옮긴이-)
[아름다운 신앙]
연옥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우리네 지식의 빛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큰 위안이 된다. 그러나 두렵게도 사람이 죽으면 곧 슬픈 의문이 생긴다. 즉
"그 영혼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느님의 예지와 무한하신 인자하심]
영세한 천진한 어린이, 순교자, 극소수의 특별한 성인 외에는 신자 대부분이 보속을 완전히다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난다. 이런 사람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 천국에 갈까? 결코 그렇지 않다. "미소한 더러움도 천국에는 들여지지 않는다."라는 격언은 참말이다. 그러면 지옥에 가는가? 그것도 결코 그렇지 않다. 너무나 맞지 않는 벌이기 때문에 그래서는 하느님의 공의는 잔인하다는 말을 들어도 하는 수 없다. 무한하신 하느님의 예지는 이에 대단히 흡족한 해결을 지으셨다. 즉, '연옥의 존재'이다.
또 연옥의 존재는 하느님의 예지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그 무한하신 자비심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천사가 시험을 당할 때에는 두 가지 결과밖에 없었다. 즉 충실하였던 자는 천국에 들어가고 하느님을 거스론 자는 지옥에 떨어졌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이 허약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현세에서는 죄인이 회개할 시기를 주시고 또 후세에서는 그 영혼을 완전히 정화할 여유를 주시는 것이다.
죄 중에 오랜 세월, 혹은 한평생을 보낸 죄인까지도 임종 때에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는 까닭은 연옥에서 저들의 영혼을 깨끗이 닦아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기에 적합한 자로 만드시기 때문이다. 즉 연옥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인자를 보이는 '완전한 방법'이다.
[우리를 성하하는 기묘한 방법]
현세의 생명은 참 생명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의 입구요 참 생명의 불완전하고 거친 작품이다. 그러기에 성서에도 "여러분은 이런 말로 위로하십시오."(1데살 4, 18)라고 하였다. 뒤에 남은 자는 아주 쉽고도 대단히 유효한 수단으로 죽은 이를 위로하고, 그 고통을 덜어 주고, 천국에 들어가는 때가 빨리 오도록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연옥에 대한 믿은 우리에게 훌륭한 교훈이 된다. 즉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위대한 엄위, 사람의 최종 목적의 구령, 현세 영화의 덧없음, 하느님의 무한한 인자, 십자가의 가치, 모든 성인의 통공의 절실한 위안, 시간의 가치, 영원한 생명의 준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회개의 필요성, 쉽사리 범하게 되는 소죄도 후세에서 엄히 처벌된다는 것등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의 걸작]
우리는 연옥을 두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여야 한다. 또 실상 자주 연옥을 상기해 본다면 우리는 거기서 고생하고 있는 영혼을 위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는 두터운 신앙으로 살아, 이승에 있을 동안에 될 수 있는 대로 하느님의 공의를 채워 드리고, 후세에는 빨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메스트르의 말]
철학자이며 유명한 정치가인 조제프 마리 드메스트르는 말했다.
"비상한 감동을 일으키는 연옥에 대한 믿음의 조항이 사람의 마음에 있는 고상한 경향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 것인가 하면, 연옥 문제로 가톨릭 교회를 떠난 프로테스탄트 교도가 죽은 이를 위해 기도와 위로가 필요함을 통절히 느끼고 그것 때문에 가톨릭 교회로 개종하는 이가 많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미사를 청한 프로테스탄트의 한 전도사]
성공회의 한 전도사는 아내와 부모를 잃고 몹시 슬퍼하였다. 거기서는 망자를 위한 기도가 없으므로 퍽 섭섭하게 여겨 첫 기일을 당하자 미사를 청하였다. 두 시간 남짓이나 기차를 타지 않으면 성당에 올 수 없는 불편한 고장인지라 전날 여관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미사 참례를 하고 돌아갔다. 그 후에도 그와 같이 하고 있다.
[백작 부인과 주교]
영국의 스트래퍼드 백작 부인은 아미앵 시의 드 라 모트 주교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 후에 개신교의 신앙이 어지간히 흔들렸다. 가톨릭 교회로 개종하는 데 장애로는 다만 미사와 연옥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이걸 보고 주교는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 당신은 런던의 개신교 주교를 아시지요? 만일 그분이 성 아우구스티노는 망자를 위하여, 특히 자기 모친을 위하여 미사를 드리지 않았다고 증명할 수 있다면 나는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지만 개신교도가 되겠다고 그에게 전해 주시오."
부인은 즉시 런던의 개신교 주교에게 편지를 띄웠지만 그는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인의 의혹은 사라지고 그녀는 가톨릭 교회로 개종하였던 것이다.
[연옥에 대한 신앙을 듣고 개종]
와수르 자작의 이야기인데, 루터파의 한 신도가 연옥의 존재에 감동되어 프로테스탄트를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 개종자의 동생이 어느 날 식사 중에 급사하였다. 식사 중에 준비 없이 무덤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그는 늘 괴로운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천국의 행복을 누리려면 결백한 영혼이어야 함은 잘 알고 있었으나, 루터파에서는 천국과 지옥뿐으로 그 중간에 죄를 보속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동생의 영혼은 지옥에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밤낮 고민한 결과 불면증이 생겨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휴양하기 위해 여행이나 하면 좋을 거라고 권하면 그는 대답했다.
"그리 멀리 가지도 못하고 돌아오지 않는 영원한 나그네길을 떠나게 될 테지. '이 나그네, 여기 발을 멈추고 잠들다.'라고 작은 묘비에 쓰여지고, 성명을 기록하기 위해 여행증을 조사당하는 건 싫다."
그러나 친구 친척의 재삼 권유로 이 스코틀랜드인은 마침내 대륙으로 여행을 나섰다. 나는 이 사나이와 동승하고 상륙 후에는 같은 여관에 묵었다. 그는, 동생은 반드시 지옥에 갓을 거라며 실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톨릭 교회의 연옥 존재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랬더니 그는 기쁨에 넘쳐 11월 2일 위령의 날에 나와 함께 미사 참례를 하고 성당을 나올 때에 내게 말하였다. "동생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제 동생의 영혼은 아마 연옥에 있겠지요. 선업을 하여 그를 돕겠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가 될 결심을 했습니다."
[망자를 위해 기도하라]
1882년, 그는 나의 본당과 약 20리 떨어진 한 교회의 주임 사제가 되었다. 내가 그를 알기 시작한 것은 1869년이었는데 가까이 살게 되고부터는 점점 친하게 지내어 친형제보다 더한 사이가 되었다.
애주 두세 번 나를 찾아오는 그는 재빠른 걸음으로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와서는 언제나 가운뎃손가락으로 세 번 문을 두드렸다. 그 두드리는 품은 처음 두 번은 빨리 연달아서 그리고 사이를 두고 또 한 번 두드리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왜 내가 이렇게 자상한 것까지 쓰느냐 하면, 다음을 읽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는 41세로 이 세상을 떠났는데, 모범적 생애를 보냈으며 만사를 하느님 섭리에 맡기고 병자 성사를 받고 본당 교우들의 기도 속에 영면하였다. 장례는 5월 29일 집행되었으며 신자는 물론이요. 각 지방에서 많은 신부가 참석하여 이 망자를 칭찬하고, 그 영혼은 확실히 천국 영복을 누리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장례식이 끝난 그 날 밤, 나는 다른 한 신부와 함께 어느 교회의 주임 사제한테서 일박하였다. 내일 아침은 기차 시간 관계로 미사 드리기 전에 돌아가리라고 말하였다.
피로를 풀려고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까 별안간 침실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눈을 뜨고 "들어오시오."하고 대답했다.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촛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꼭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주위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얼마 동안 생각해 보고는 "아, 꿈이었나? 혹 잘못 들은 소린가?" 하고 또 머리를 베개 위에 뉘고 잠을 청했다. 12시 10분이 지나서 문 밖에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나고 가운뎃손가락으로 똑똑, 똑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정직하게 고백한다. 나는 이 소리를 듣고 "들어오시오."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공포에 짓눌려 그가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두드리는 품으로 보아 그가 누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슬프다. 내 친우의 영혼은 연옥에 있구나. 그는 괴로우니까 내게 기도를 청하는 것이리라."라고 생각할 즈음 또 문 밖에서 옷자락 소리가 나고 같은 방식으로 세 번 가운뎃손가락으로 문을 두드렸다. "망자의 영혼은 살아 있는 자를 해치지는 않는다. 벗의 영혼은 조만간 천국에 들어갈 테니까 될 수 있는 대로 그를 도와 주자."라고 생각하자 무서운 생각은 다소 누그러졌다.
성무 일도서를 들고 죽은 이를 위한 기도문과 일곱 가지 통회의 시편을 바치고 또 여러가지 은사가 붙어 있는 기도를 하고, 끝으로 어떤 경우에나 큰 위로가 되는 묵주의 기도를 바쳤다. 세 시간 남짓한 동안에 약 10분마다 옷자락 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오전 3시 20분이 되니까 문을 세 번 두드린 후 빠르고 쨍쨍한 발소리로 내 침실 앞에서 떠나 급히 계단을 내려갔는데, 요란하게 교회 정문을 여는 소리가 나고, 그 후로는 조용하여 문도 두드리지 않았다.
의심 없이 벗은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나는 3시 40분에 침실을 나와 이런 사정을 모르는 다른 두 신부와 함께 성당에서 죽은 벗을 위해 미사를 드렸다. 이 후에도 몇 번이나 그를 위한 미사를 드렸으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이상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상은 나(어떤 신부)의 5월 30일 일기를 옮겨 적은 것이다.
이 신기한 사실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 항간의 많은 도깨비나 유령 이야기가 전부 다 사실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미신이나 경솔함 또는 상상에서 오는 수가 많다. 그렇지만 자연계와 초자연계와의 거리는 실로 종이 한 장밖에 안 된다. 또 망령이 이승 사람에게 나타나는 일은 하느님의 전능, 정의, 인자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
성 토마스는 그의 신학에서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섭리로 연옥에 있는 영혼이 생존자의 기도를 청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믿어도 좋다."
[십자가의 예수의 마리아 수녀전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지 베들레헴에 있는 가르멜회 수녀원에서 산 이 수녀는 1878년 성녀 같은 최후를 마쳤다. 다음의 여러 가지 사건들은 이상한 생각이들겠으나, 히스테리적 여인의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1) 마리아 수녀는 망갈로르 시의 교황 사절 마리 에프렘 주교가 사망할 해(1973년)를 예언하였다. 이 주교는 연옥 불 속에서 여러 번 마리아 수녀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 수녀는 베들레헴에 창립되는 수도원 성당에서 첫 미사가 봉헌될 때에 주교의 영혼은 승천하리라는 하느님의 묵시르 받았다. 1876년 11월 21일, 급히 서둘러 지은 베들레헴의 새 성당에서 예루살렘의 브리코 주교가 첫 미사를 드릴 때에 마리아 수녀는 에프렘 주교의 영혼이 연옥에서 나와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2) 마리아 수녀가 지원자 시절, 카브렛 시에 있었을 때에 20년 전에 죽은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나타나서 5년 전부터 친척은 모두 자기를 잊어버렸으니 미사 세 대를 바쳐 주고 또 사제가 자기를 위해 한 시간 묵상해 주기를 청하였다.
3) 1867년 11월, 원장 수녀는 수십년간 고민하고 있던 자기 심정을 마리아 수녀에게 털어놓았다. 그것은 35년 전에 급히 죽은 자기 부친은 사회 사람들의 눈에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수계 범절을 안했고 또 성사도 받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그 영혼 사정이 크게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마리아 수녀는 기도하고 나더니 그 영혼은 임종 때에 특별한 은총을 받아 통회했으며 지금도 연옥에 있고 아직도 6개월 동안의 보속이 남아 있다고 말하였다.
원장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만일 부친의 성을 말한다면 믿겠다고 하였다. 수도원에서는 이름은 알려져 있지만 성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다. 마리아 수녀는 잠시 기도하고서 원장에게 말했다.
"부친께서는 레이슈 씨입니다."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원장은 부친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즉시 선업 클럽을 짜서 기도, 고행, 십자가의 길 기도, 미사 등을 죽은 이를 위해 바쳤다. 밤 12시, 일동이 마흔 꿰미의 묵주기도를 마치자 원장 부친의 영혼은 천국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리아 수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현세의 덧없음을 깨닫는 영혼은 행복하다."
4) 가르멜회에 들어가기 전에 마리아 수녀는 전에 죽은 수녀의 방문을 받았다. 그녀는 청빈 허원을 거슬러 제 맘대로 쓰기 위해 수도원 다락방에 5프랑짜리 은화 한 닢을 숨기고 임종때에도 그것을 고백할 용기가 없어 그대로 죽었다. 그것 때문에 연옥에서 몹시 고통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장소를 보니 과연 앙화로운 5프랑짜리 은화 한 닢이 있었다. 원장은 이 묵시에 대단히 감동하여 곧 이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희사하였다.
5) 이 무렵 또 다른 수녀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연옥에서 탈도죄를 보속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녀가 나타났었다는 증거로 사탕 세 개를 마리아에게 주었다. 그녀는 죽은 수녀의 원장에게 하나를 주고 불쌍한 수녀를 위하여 모든 이에게 기도를 청하였다.
6) 1873년 10월 26일, 마리아 수녀는 연옥 불 속에 있는 한 총장을 보았다. 그녀는 생존 시 청빈 덕목을 거슬러 50년 전부터 고생하고 있는 것이었다.
7) 또 마리아 수녀는 1874년 7월, 수도원에서 성녀라며 평판이 높았던 수녀를 연옥에서 보았다. 그녀는 옛날에 뒷구멍으로 윗사람에 대하여 다른 수녀들에게 불만을 품게 하였던 것이다.
8) 1974년 12월 21일, 또 한 수녀가 마리아에게 나타났다. 그녀는 동료들이 자기를 총장으로 선출해 주지 않자 교만과 원한에서 자기 재산을 수도원에 남기는 대신에 친척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었다.
9) 1878년 3월 1일, 다른 수녀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도원에서 높은 직책을 맡기를 원했으므로 연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10) 프랑스 서남방 포 시에 신심 깉은 부인이 있었다. 마리아 수녀는 그녀의 딸에게 말했다.
"수년 전에 돌아가신 당신 어머니는 그분의 기부로 세워진 성당 축성식날에 승천하셨습니다."
딸은 그렇게 오랫동안 보속해야 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겼다. 그런데 죽은 이가 얼마 후에 마리아 수녀에게 나타나 말했다.
"지금 나는 하느님의 흠 없으심과 자비하심을 깨달았습니다."
11) 같은 지방 비욘 시의 신학교장이며 신앙이 두터운 미노다스 신부는 단 다섯 시간 연옥에 머물렀는데 그 기간이 50년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한다.
12) 1874년 6월 2일, 마르세유 시의 가르멜회 창립자 힐라리온 원장은 연옥을 무사히 통과하였다. 마리아 수녀는 이를 보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막바로 천국으로 갈 수 있었습니까?"
"애덕을 거스르지 않고 또 언제나 규칙을 엄중이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고 원장은 대답하였다.
13) 1875년 6월 2일, 마리아 수녀는 탈혼 상태에서 깨어나 원장에게 말했다.
"오늘 아침 할머니 한 분이 제 앞을 지나가시면서 '나의 귀양살이는 끝났다. 날마다 당신을 위하여 충실히 묵주기도를 바쳐 나의 귀양살이가 끝나 기쁘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몽펠리에 시에서 3년 전에 저를 친절하게 재워준 앙조르 부인인 것 같습니다."
마침 그 날 밤 가르멜회에 전보가 왔다. 그것은 '앙조르 부인 사망'이라는 소식이었다.
[유령인가]
1878년 벨기에 루뱅 시에서 예수회의 필립 쇼프 사제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앙베르 시에서 전교하기 시작했을때에 일어난 다음 이야기를 가끔 하였다.
어느 날 두 청년이 열 살쯤 되는 파리한 아이를 데리고 신부를 찾아와서 물었다.
"이 애는 저녁마다 환상을 보기 때문에 몇 주 전부터 쇠약해져서 이처럼 딱한 꼴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좋을는지요?"
그래서 신부는 청년에게는 고백성사를 보고 영성체하도록 권하고,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저녁 기도를 바치고 안심하고 자거라. 그래도 유령이 나오거든 또 알려 다오."
보름이 지나서 두 청년은 또 찾아와서 말했다.
"말씀대로 했습니다만 역시 유령이 나옵니다."
그래서 신부는 말했다.
"그러면 오늘 밤부터 종이와 펜과 잉크를 가지고 아이 방 입구에서 기다렸다가 '유령이 나타났다.'하거든 들어가 보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누군가, 언제 죽었는가, 어디서 살고 있었는가, 왜 나타나는가를 물어 보시오."
다음 날 청년들은 대답이 쓰여 있는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왔다. 이 유령은 노인이며 상반신만 보였다. 청년들도 보았다는 것이었다. 앙베르 시의 어느 집에 살고 있었으며 1636년에 죽은 은행장이었다. 시의 사료를 조사해 보니 이것은 사실이었다. 지금은 연옥에 있는데 자기를 위하여 아무도 기도해 주지 않으니까 부디 이 집 사람들은 모두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해줄 것과 루뱅 시와 브뤼셀 시의 성모 성당에 참배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신부는 이렇게 일렀다.
"그럼 당신들은 부탁받은 선업을 실행하시오. 또 만일 한 번 더 나타나거든 딴 이야기를 걸기 전에 먼저 주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을 외우게 하시오."
청년은 그 선업을 한 후에 신부에게 왔다.
"신부님, 나타난 노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두터운 신앙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 열심한 기도를 우리는 이 때까지 들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주의 기도를 바칠 때의 그 존경, 성모송을 바칠 때의 사랑, 사도신경을 바칠 동안의 그 확신... 기도가 어떤 것인가를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 은혜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노인은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게 일을 보는 처녀는 만일 모고해를 하지 않았다면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을 처녀에게 해주었더니 그녀는 새파랗게 질려 범한 독성죄를 우리에게 고백하고 즉시 사제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이 때부터 유령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집에 살던 일가족은 퍽 행복하게 되었다. 두 청년은 모범적 신자가 되고, 그 누이는 수녀가 되어 나중에는 수녀원장이 되었다.
[연옥 영혼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1891년 12월 6일 목요일, 오몽 시의 구조원에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한 수녀가 죽었다. 요세피나라는 이 수녀는 5년 전부터 거기 살았으며 특히 병자르 돌봐 주고 있었는데 암종류의 병자를 간호하다가 자기도 병들어 몇 해 동안 심한 고통을 참아 견딘 후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장례날 저녁 6시경, 프로스페르라는 절름발이가 양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짚고 성당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가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가는데 별안간 꼼짝할 수 없게 되고 그의 손에 사람 손길의 따스함을 느꼈다. 그리고 귀에 익은 요세피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프로스페르의 피는 얼음같이 되었다. 곧 성당으로 되돌아가서 원장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였다. 원장은 잠자코 있으라고 이르고는 주임 신부에게 이 사정을 말했다. 또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지키기로 하였다.
8일 오후 5시, 강복 침례 후에 프로스페르는 자기 고해신부인 보좌신부에게 전전날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랬더니 신부는 비웃으며 그건 프로스페르가 병자라서 그렇다고 했다. 신부가 자기방에 돌아가 보니 책상 한가운데 프로스페르가 한 말, 즉"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라는 글이 쓰여 있는 종이 한 장이 있었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보좌 신부는 그 종이를 집어 들고 건넌방에 있는 주임 신부에게 보이고 또 아까 비웃었던 일도 이야기하였다. 이 종이 뒤쪽에는 로마의 역사가 적혀 있었다. 구조원 수녀에게 보이니까 그것은 요세피나 수녀의 필체라고 단언하였다.
4개월 후 예수 부활 다음 목요일 오후 3시경, 프로스페르가 피곤하여 누워 있는데 갑자기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났다. 둘러보니 요세피나 수녀가 서 있었다. 성광이 양 어깨에 걸려 있었다.
"안심하세요. 접니다. 연옥에 있지 않습니다. 영복을 얻었습니다."
하고 수녀는 말했다. 프로스페르는 몹시 감동하여 부르짖었다.
"수녀님, 제발 저를 고쳐 주십시오."
"아닙니다. 이 병은 당신의 구원을 위해 필요합니다. 복된 고통입니다. 한결같이 연옥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죄인을 위해 보속하십시오."
수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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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여, 이 이야기를 읽고도 아직 연옥의 존재를 의심하는가? 물론 이것은 믿을 교리는 아니다. 또 가톨릭 교회의 교리는 그런 것 위에 세워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성인전에도 연옥 영혼이 나타난 실례는 적지 않다. 이런 실례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을 뿐더러 이를 비추어 주는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믿어지고 있는 유령 이야기는 주로 망신이다. 그러나 진실한 출현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