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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위령탑(성모님의포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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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 : 셋. 공포의 나날들 - 마리 데레사 패터슨.mp3

 

 

셋. 공포의 나날들 - 마리 데레사 패터슨

 

생일날이었다. 평소처럼 온 가족이 함께 미사에 참석했고, 어머니가 특별히 마련한 저녁을 들시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멀리서 찾아오셨으며, 그라자레서 오빠 스티븐과 아버지가 재미난 이야기를 해서 우리는 정신 없이 웃어댔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함게 놀이를 했다. 이렇듯 행복한 가정에 대한 추억이 많고 많다.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자라면서 누구의 속을 썩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부모의 뜻을 거역한다든가 문제를 일으킨 적이 결코 없었다. 오죽했으면 문제아 학급을 부러워했을까. 나는 운동과 음악과 공부에 열성적이었다. 그러면서 특히 사랑하는 부모님과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즐거웠다.

학적부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면 나는 길다란 금발에 짙은 푸른색 눈을 한 날씬하고 매력있는 아가씨였다. 그러나 그 사진에는 찍혀 있지 않은 사실인데, 나는 남자 친구를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너무나 수줍음을 타서 누구 하나 사귀지 못하고 지내는 고민을 갖고 있었다.

대학 2학년이 끝나갈 무렵 나는 패트릭을 만났다. 우리는 같은 과목을 듣다가 만났는데, 그와는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이 끌렸다. 그도 육상선수였고 큰 키에 갈색머리, 유난히 눈이 검었다. 우리는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패트릭은 경쟁심도 남달라 유난히 공부에 열심이었다.

우리는 틈만 나면 같이 지내면서 서로의 관심사를 함께 나누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자전거 여행을 하고 등산을 하고 보트 놀이를 함께했다. 우리가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였다. 나는 신앙심이 깊은 가톨릭인으로서 교회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패트릭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성 문제가 대두되었다. "마리,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게 무슨 문제라는 거야? 우린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걸."

"성 관계는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거니까 결혼한 뒤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패트릭은 성급하게 나를 설득하려고 들었다. "네가 날 정말 사랑한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러나 나는 한마디롤 거절했다. 그런데 그가 학업 관계로 다른 도시에 가게 되어 자연히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

2년 뒤 패트릭이 하계 인턴과정 이수차 내가 공부하고 있던 도시로 왔고, 그래서 우리는 다시 어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둘 다 학창생활을 마무리하는 단계였고, 따라서 시간을 함께하면서 서로의 꿈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 분별있는 판단과 가치관에 다시 한번 도전을 받아야 했을 때 나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성 관계를 갖기 전에 나는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하여 임신을 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했다. 나는 속으로 '아무 문제도 아냐.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어. 앞으로 결혼할 텐데, 뭐.' 특히 미사 시간이면 하느님에게서 도망가 숨고 싶었다.

그렇게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나는 한동안 월경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육상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 몇 달씩 건너 뛸 때도 있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패트릭이 걱정을 해서 그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임신자가진단을 해보았다. 결과는 음성이었으나 패트릭의 걱정도 덜어줄 겸 그의 뜻에 따라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졸업 실습에 임하고 있을 때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마리, 당신의 혈액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습니다."

나는 전화에 대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 하느님." 그러자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가슴이 답답해 오면서 몸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의사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그렇다고 세상이 끝난 건 아닙니다. 결혼하면 모든 게 해결될 테니까요."

그러나 충격을 받은 나는 의사의 말을 귀담아들을 여유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어떻게든 오전 실습을 끝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마음과 몸이 마비된 듯 정신이 멍해졌다. 결국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패특릭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과가 나왔어. 점심때 만나 이야기해."

우리는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신한 게 확실해?"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다고."

그의 얼굴에는 겁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그 역시 나만큼 두려워하고 있었다.

"우린 결혼해야 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는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나 역시 그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이 사건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부모님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두 분이 얼마나 낙심할까 하는 생각을 하니 더 두려워졌다. 나는 여동생 제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나 임신했어."

동생은 나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나는 계속 울었다.

동생이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셈이야?"

"나도 모르겠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낙태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건 분명 살인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다는 말인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결국 부모님이 아시게 될 테고 그분들은 말할 수 없이 실망하실 것이다. 그건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여동생에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아기를 낳아야 할까 봐."

"언니, 용기가 대단해."

그러나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튿날 나는 미혼모 상당원을 만났다. 그러나 판에 박힌 듯한 이야기만 해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신이 무슨 결정을 하든 그 결과를 안고 한평생 살아가야 해요, 만일 아기를 낳는다면 당신은 아기를 돌보고 부양할 책임을 지는 거지요. 그리고 아기를 위해 몸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상담원의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한없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상당원은 계속해서 말했다.

"만일 낙태를 한다면 그 결정 역시 평생도록 당신을 따라다닐 겁니다."

그녀가 내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조언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상담실을 나서는 나는 더욱 외롭게 불안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이니 당연히 교회를 찾아야 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빛을 주실지도 몰라.' 나는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기대감을 갖고 신부를 찾아갔다. 그러나 신부는 내가 경박한 철부지 아가씨로 보였는지 기대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생명을 중시해야 한다는 설교를 했으나 현실적인 대안책은 없었고 따뜻함도 느낄 수 없없다.

신부는 하느님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어떤 실수도 용서하신다는 위로의 말도 곁들었으나 내게는 공허한 울림뿐이었다.

패트릭을 만났을 때 그는 "난 네가 낙태 쪽을 선택하기를 원해. 어제 우리 어머니와 이야기를 해보았느데, 그분도 그게 최선책이러고 하셨어."하고 말했다.

"정말 그러길 원해 ?"

"이대로 아기를 낳으면 두 사람의 인생은 다 망가지고 말 거야. 난 그렇게 되길 원치 않아." 그러면서 그는 뻔한 말을 덧붙였다. "난 지금 결혼해서 아기를 가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나는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 주변에는 나를 이 곤경에서 건져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상담원이 마음가짐은 되어 있느냐고 물었던 질문을 놓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의 대답은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할뿐더러 정말 두렵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러 날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낙태 쪽으로 기울어졌다. 낙태가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날 기억이 생생하다. 금요일 오전 6시 정각에 나는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병원을 혼자 갔다. 그날은 내 평생에 가장 끔찍스런 날이었고,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다. 하기 인턴과정을 끝내고 돌아갔던 패트릭이 나중에 비행기로 오기는 했지만 나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날 곧바로 입원실로 들어갔는데 멍한 상태로 환자복을 걸치고 이런저런 지시를 따르면 기다렸다. 그리고 운반차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뒤의 것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회복실에서 마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구토를 했다. 그 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다시 입원실로 돌아왔다는 것과 패트릭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기분이 어때 ?" 하고 물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임신상태도 아닐뿐더러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안도감 외에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아무튼 일이 무사히 끝나 다행이었다.

이튿날 나와 패트릭은 자전거 소풍을 나갔다. 그런데 나는 그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왈칵 짜증부터 났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나에게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어 ?" 하고 쏘아붙였다. 주말이 지나자 그에게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고,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나는 다시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그뒤 나는 물리요법사 수련을 받으면서 낙태 사실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여동생과 같은 학과 학생들이 졸업식에서 나를 추켜세울 때에는 낙태 같은 건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졸업 후에 나는 시애틀에 가서 물리요법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여전히 성당에 다니면서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로 미사중에 일부러 낙태를 머리에 떠올린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에게서 도망쳐 숨고 싶은 기분은 자주 들었다.

시애틀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 주말마다 포틀랜드로 부모님을 찾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남동생과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라디오에서 다음과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하늘에서 그대를 나려다보고 있고, 그러기에 그대의 속마음을 휜히 안다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엔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나의 속마음을 휜히 읽고 계실 하느님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 노래를 더 이상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나는 벌떡 일어나 자동차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온갖 일에 대한 흥미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내 마음속은 온통 하느님이 낙태 사실을 알고 계신다는 것과 이제 다시는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으리라는 비통함으로 꽉 차버렸다. 설령 행복해진다고 해도 그 끔찍한 기억이 다시 떠올라 지금처럼 칙칙하고 암울한 상태로 끌어내리고 말 것 같았다.

시애틀에 돌아와서도 내가 낙태를 했다는 죄의식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나는 본당에서 비교적 젊은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받았다. 지금까지 비밀을 고백한 상대는 여동생말고는 신부가 처음이었다. 나는 내내 흐느껴 울었다.

그 신부는 점잖고 친절했다. "당신은 자신이 행한 일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 게 분명하군요.' 그리고 사죄경을 염해준 다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용서하셨습니다만,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 스스로를 용서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전의 신부보다 이 신부는 따뜻한 온정을 느끼게 했고, 그래서 그런지 그의 말도 마음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나는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나 자신도 용서하겠노라고 다짐하며 고백실을 나왔다.

성당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나는 하느님이 진실로 나를 용서하셨다고 느꼈다. 그러자 깊은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에게서 도망쳐 숨지 않아도 되고 미사에 가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문제였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끔찍한 일을 해야 했단 말인가? 나는 늘 옳은 일만을 추구해 온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는 동안 나는 그리스도인 친구를 사귀고 여성 성서연구 모임에도 가입했다. 나는 예수의 존재를 갈수록 실감하면서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때로는 성서연구 모임에 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마리, 넌 용서받았고, 예수님도 네가 그 자리에 나가길 바라신다.'는 말로 자신을 달래곤 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낙태반대론자들이 낙태시술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광경을 보기라도 할라치면 나는 다시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낙태에 관한 이야기는 듣기조차 싫었다. 그래서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거나 아예 텔레비전을 꺼버리곤 했다.

그때 나는 존과 사귀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산보를 하면서 그가 "아이는 몇이나 낳고 싶어요?"하고 물었다. 그 물음은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얼마든지 오갈 수 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공포로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도망치듯이 그와 헤어졌다.

그뒤로 나는 공포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일단 공포와 불안이 엄습하면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맥박이 요동쳤다. 움지이거나 말하는 것도 힘들었다. 마치 내 안에서 생명이 느린 속도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정신신경과 상담원은 이런 증세에 대처할 수 있는 처방을 이것저것 제시하곤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밤에는 가슴이 답답하게 막혀 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느날 저녁 무렵 포틀랜드에서 시애틀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예의 그 불안이 엄습해왔다 .도저히 운전을 할 자신이 없었다. 마침 아버지가 옆에 있다가 "마리, 왜 그러느냐?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보구나, 그렇지?" 하고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겨우 용기를 내어 말했다. "아빠, 제가 너무 고약한 실수를 해버린 거예요.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을 용사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아빠는 절 사랑할 수 있으세요?"

"얘야,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그건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난 너를 언제까지나 사랑할 게다. 그리고 하느님께 다가가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알아요, 아빠."

아버지의 말씀이 힘이 되었다. 덕분에 대화가 끝나자 나는 얼마간 안정되어 자동차를 몰고 시애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불안은 시도 때도 없이 엄습했고, 그럴 때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운전은 아예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에 포틀랜드에 다녀가라는 어머니의 연락을 받았다. 남동생이 집에 온다는 것이었다.

"엄마, 전 못 가요. 운전을 할 수가 없어요."

"얘야, 대체 무슨 일이니? 무슨 문제가 생겼니?"

나는 비행기 편으로 포틀랜드에 가서 어머니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사랑이 답겨 있었다.

"왜 좀더 일찍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니?"

"두 분께서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어요."

"애초에 우리한테 이야기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구나. 우리가 네 힘이 되어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더없이 수치스럽게 여기실 거라는 생각만 했던 것이다.

"너도 알잖니? 하느님은 널 용서하셨다는 걸 말이다."

"알아요."

"그럼 너도 네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하려고 해도 방법을 모르겠어요."

나는 어머니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으나 공포 증세는 더욱 악화되어 그 섬뜩한 시간이 더 길어져 갔다. 공포와 불안이 언제쯤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이처럼 비정상적인 상태로 남은 일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직장 동료가 나를 걱정하다 못해 정신과 의사를 만나도록 주선해주었다. 정신과 의사는 아버지처럼 깊은 이해심을 가지고 나를 대해주었다.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 약을 처방해주고 공포와 불안 증세를 읽어낼수 있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치료가 계속되면서 증상은 차츰 완화되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낙태한 후로 오래도록 그 행위가 표면으로 떠오르지 못하도록 꽁꽁 묻어두는 일에다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부어 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정상으로 보였던 그 동안의 삶이 사실은 그 사건을 나의 의식세계로 스며들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힘겨운 싸움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존에게서 아이들에 관한 질문을 들은 순간 제어력을 상실하면서 억압되어 있던 공포의 감정이 강하게 튀어올라 온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힘이 되었다. 공포감이 엄습할 때마다 처방해준 약을 먹었다. 그 약은 고맙게도 상당한 통제능력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도움을 필요했다. 그러자 마치 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인 양 친구가 낙태 여성을 위한 성서공부 모임이자 그리스도 신앙을 바탕으로 낙태 여성을 돕는 '마음과 마음으로'라는 단체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이것은 내게 기쁜 소식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주관하는 한 모임에 등록했다. 기간은 8주간으로, 매주 화요일 두 시간 반씩 회동하는 모임이었다.

첫날 저녁은 더없이 감동적이었다. 지도자와 보조자, 그리고 나와 처지가 비슷한 네 명의 여성이 자신들의 체험을 털어놓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눈물을 흘렸다. 지도자가 말했다.

"지금은 믿기 어렵겠지만 8주간이 지나고 나면 여러분은 상당한 치유효과를 얻게 될 겁니다. 여러분은 단순히 좋아졌다는 느낌뿐 아니라 기쁨을 다시 맛볼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다시 기쁨을 맛보게 된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맨 먼저 하느님께서 하신 두 가지 약속부터 배웠다.

하느님은 "나의 통곡하는 슬픔을 춤으로 바꿔주시고"(시편 30,11) "너의 죄를 나의 기억에서 말끔히 씻어버리리라."(이사 43,25)고 하셨다.

이 성서 구절들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득 안겨주었다. 아무튼 우리는 비탄의 단계 하나하나를 거쳐 나갔는데 거기에는 안도와 부정 참회 암울 용서 수용 별리 등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느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은 벌써 알고 있었지만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깨달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바로 그것이 우울증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이 점을 일기에다 기록했다.

나는 패트릭과 어울린 자신에게 화가 난다. 그리고 그가 나를 가지고 놀도록 하고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쓴 나 자신이 밉다. 낙태하기로 결심하고 그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감추려 했던 비겁함이 너무 싫다. 나는 내가 나약했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진다. 어떻게 그토록 어리석게 굴었을까?

 

어떤 날은 성서를 읽으면서 하느님의 약속을 나에게 해주신 것으로 생각하면서 힘을 얻기도 했다.

 

"그분이 매맞은 상처로 마리, 너의 상처는 나았도다."

"나 마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들어줄 만큼 힘이 있었다. 나는 또한 패트릭에 대한 분노와도 맞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은 정신과 의사의 조언에 따라 쓴 글이다.

 

패트릭, 당신이 나에게 한 소행은 경멸받아 마땅합니다. 당신은 이기적이고 미숙하고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난 당신을 사랑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당신은 그것을 이용해 나를 나쁜 길로 이끌었습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당신은 형편없는 인간입니다. 당신의 사진을 본다거나 당신의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도 견딜 수 없을 만큼 당신은 역겹기 그지없습니다. 당신은 자신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이며, 내게 허무와 상처만 남겨주었습니다.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지만, 당신은 존경받을 가치가 조금도 없는 인간입니다.

 

정신과 의사와 함께 보낸 시간 가운데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자신과 패트릭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의사의 충고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패트릭의 가정과 성장 과정, 그 결과 그의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은 동정적으로 변했다. 게다가 내가 성서를 통해 깨들은 것은 하느님이 나에게 진실로 용서할 것을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이었다.

 

친애하는 패트릭, 나는 이제 당신을 생각할 때도 화가 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를 교묘하게 조종했고, 나에게 묘한 기분을 느끼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낙태에 대해 당신이 져야 할 책임은 용사하겠습니다. 당신은 주님을 알지 못했고, 주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진리 또한 알 수 없었습니다. 아무쪼록 당신의 삶 속에 그리스도인들을 들여보내주시어 주님께로 다가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도 용서하며 언젠가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르 기원합니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과거를 용서하는 일은 나의 자아를 깊이 치유해주었다. 그러나 패트릭을 용서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휠씬 힘들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수없이 자신에게 방문해보았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의 조언과 성서공부 모임 덕분에 나는 지난날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길 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마리, 네 자신을 언제까지나 용서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문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너는 어리고 미숙하고 겁 많던 그 아가씨를 용서해야 한다. 그 시절의 너는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믿을 저버렸던 것은 사실이다. 너는 네 행실을 합리화하려고 했을 뿐 그 대가가 어떤 것인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너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으나 그 행실 때문에 네 자신을 괴롭히는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예수께서 이미 값을 치르셨고, 또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면 네 자신을 용서하라. 예수께서는 네가 괴로워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그분이 네게 바라시는 것은 네가 용서받았음을 믿고 당신의 뜻을 따르는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일이다.

 

나는 자신을 용서하기 시작하면서 내 죽은 아기에게 편지를 쓰는 일도 가능해졌다.

 

사랑하는 제이미, 난 너를 제이미라고 이름지었단다. 내가 너에게 한 일을 용서해주렴. 정말 미안하구나. 제발 용서해다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란다. 지금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과 하나되어 어느날인가 마침내 너와 다시 결합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그것이란다. 그리고 그때까지 너는 늘 마음속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너를 만나면 너에게 직접 이야기해주마.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8주간 연수회에서 마지막 과정은 받아들임과 떠나보냄이었다. 이 과정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으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는 예수님께 바치는 기도문을 작성했다.

 

주여, 나로서는 너무나도 벅차고 힘든 일이지만 아기를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아울러 쓰라진 과거도 떨쳐버리고자 합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당신을 섬기고 당신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마침내 자유로워져서 당신의 도구로 쓰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그후 주님은 정말 나를 활용하셨다. 나는 낙태 경험이 있는 리아나라는 가톨릭 신자를 만났고, 그리고 우리는 낙태했던 가톨릭 여성들을 돕는 작은 단체를 출범시켰다. 우리는 가톨릭 교회 특유의 문제들에 관해, 또 낙태와 연관된 우리의 가톨릭적 체험, 특히 그 중에서도 내가 깊이 느꼈던 죄책감을 함께 나누었다.

1992년 6월 3일, 그러니까 제이미가 죽은 지 7년 되는 해에 낙태당한 손자 때문에 애통해하고 있던 아이린과 함께 추모미사에 참석했다. 미사는 친구같이 느껴지는 조지프 신부가 집전하였다. 다음은 조지프 신부가 우리를 묵상으로 이끌기 위해 제공해주었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떤 골짜기 시냇가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주위는 온화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나는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꼭대기에 당도하니 저만치서 에수님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계셨다. 그분이 가까이 다가오자 더없이 인자하고 정다운 그분의 눈길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내가 용서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오자 그곳 연못가에 나의 어린 딸이 서 있었다. 길다랗고 새까만 머리카락을 뒤로 날리고 서 있는 아이는 무척 아름다웠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아이를 두 팔로 껴안았다. 그리고는 연못으로 데리고 가서 아이의 머리 위에 물을 두 차례 부어주어 세례를 베풀었다.

이어 아이를 데리고 다시 산 위로 올라갔더니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셨고, 나는 그분의 사랑어린 눈동자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나는 제이미를 그분에게 드렸다. 제이미를 받아 안은 그분은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아이를 그분께 드리고 나니 무척이나 슬펐다. 그러나 제이미가 어느날엔가 우리 모두가 들어갈 그곳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묵상이 끝나자 조지프 신부는 미사를 계속하기 전에 미사를 통해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무는 한 어디든 우리의 먼저 간 자녀와 새롭게 합일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미사가 끝나고 아이린과 나는 아기들의 짧은 생을 상징하는 장미 한 송이씩을 천상의 어머니이신 복된 마리아 석상 아래 나란히 올려놓았다.

얼마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매일 아버지를 그리면서 당신의 외손녀 제이미와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밤이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버지와 제이미를 더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그들에게 전해주시도록 예수님께 기도드린다.

나는 건강하게 살고 있다. 더 이상 공포와 불안이 나를 엄습하는 일은 없다. 나는 행복하며 낙태에 대한 기억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일도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과거의 나처럼 번민한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대 혼자 암울과 분노와 고통을 없애려고 애쓰지 말라. 도움의 손길을 찾으라. 그러면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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