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6편] 다섯. 치유의 여정 - 하이디 마리아 쉬미트
오디오북 : 다섯. 치유의 여정 - 하이디 마리아 쉬미트.mp3
다섯. 치유의 여정 - 하이디 마리아 쉬미트
나는 오늘도 내가 죽인 아기를 회상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그 아기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삶의 그 많은 좋은 것들을 때려부수는 데 성공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부터 나는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가버린 나의 아기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나는 위로 오빠 넷과 언니 하나를 둔 막내로 태어났다. 우리 형제는 생기발랄하고 빛나는 금발에 이목구비가 큼직한 전형적인 독일인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숱많은 언니와 내 머리를 힘들게 빗어 갈래머리로 땋아주곤 했다. 우리는 수영과 음악을 좋아했고, 미사와 교리수업에도 충실하게 참석하는 등 겉으로는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우리 가족의 내면은 겉보기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우리 가정은 활기가 넘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예측불허한 사람이었다. 금방 기분이 유쾌했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이런 아버지가 가장 못 견뎌하는 것은 게으름과 낭비,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단정하고 근면하며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살아야 했다. 특히 아버지의 분노는 표적은 가엾은 어머니일 때가 많았다. 기회를 잡았다 싶으면 으레 잔인하고 지독한 욕설로 어머니의 속을 갈기갈기 찢어놓곤 했다.
한번은 어머니가 가계부를 쓰면서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날 아버지는 이것을 트집잡아 벌겋게 달아오른 험상궂기 짝이 없는 얼굴로 어머니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빌어먹을 여자,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 지출내역을 상세하게 적으라고 수천 번도 넘게 말했잖아. 내가 낭비와 멍청한 걸 제일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이렇게 시작한 책망은 더 심한 욕설로 이어져 온 식구의 기분을 망쳐놓는 것이었다.
내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 밖에서 놀기에 바빠 미처 내 방을 치우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부엌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이 멍청한 녀석아, 내가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는 단 말이냐?"
나는 이렇게 화를 내는 아버지를 대하며 누구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을 때에는 나를 끔찍이 사랑해주었고 다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신문을 읽고 있으면 무릎에 올라앉곤 했었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공부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아버지를 신뢰하고 사랑하기는 힘들었다. 내가 그날 일어난 것들을 이야기할라치면 아버지는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서 화를 내고 야단을 쳤기 때문에 자연히 아버지 앞에서는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세 살이 되면서 오빠들이 나를 성적인 놀이 상대로 끌어들이기 시작했을 때도 아버지한테 말을 하지 못했다. 오빠들이 장난을 시작했을 때 나는 너무나 어렸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것이 나쁘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오빠들에게 대항했다.
"안 돼, 난 이제 그런 놀이는 안 할 거야."
"하는 게 좋을걸. 그렇잖음 우리가 아빠에게 일러바칠 테니까. 네가 사타구니를 만지작거렸다고 말야."
이런 위협을 받으면 나는 겁이 나서 오빠들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왜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했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열두 살이 되어서야 나는 오빠들의 나쁜 짓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었고, 그들도 물러섰다. 그러나 의식발달 이전에 형성된 비참한 자아인식은 그대로 기억 속에 각인되었고, 따라서 나는 혼란 속에서 사춘기를 지냈다. 나는 늘 사랑을 갈구했고, 행복하지 못한 자신을 느껴야 했다.
나는 8학년 때 견진성사를 받으면서 대모로 큰오빠와 재혼한 올케를 택했다. 이런 배려는 그녀가 비록 모범적인 가톨릭 신자는 아니더라도 그녀를 우리 가족으로 따뜻하게 맞이한다는 환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큰올케의 집에 자주 들렀는데 그때 눈에 띈 것이 「늑대와 비둘기」라는 책이었다. 그것은 포르노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었는데, 내가 그 책을 읽어도 올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버려두었다. 덕분에 한창 민감할 나이였던 나는 성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견진성사는 나에게 거룩한 것으로 깊이 남았다. 견진성사를 받기 위해 행렬을 지어 주교님에게로 다가갈 때 내 마음은 하느님을 향한 동경으로 충만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은 금방 잊어버렸다. 내 앞에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뜨겁게 채워주는 이성간의 사랑이었다. 그래서 일찍부터 데이트를 사작했고, 그것은 성적 관계로 발전했다. 나를 그렇게 내어주면서 다정한 태도와 부드러운 사랑을 갈구했다.
물론 하느님이 삶을 바꾸도록 나를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청소년단체 모임이나 피정에 참여할 때마다 하느님의 길을 따라 살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의심과 꾸중이 없었다면 나는 좀더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가톨릭 청소년 모임이 있던 날 밤이었다. 착한 남자 친구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어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소파에 나란히 앉아 회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거실로 들어왔다. 우리를 본 아버지의 얼굴이 분로로 달아올랐다. "하이디, 잠깐 나 좀 보자." 하며 나를 부엌으로 불러들인 아버지는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더러운 계집년 같으니! 계집아이가 사내녀석하고 그렇게 달라붙어 있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니?"
나는 너무나 놀라고 부끄러워 그 남자 아이와 함께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우리는 결국 멀리까지 갔고 그날 밤 일로 해서 내 삶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었으나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싶었고, 그것을 나는 신체 접촉을 통해 얻고 있었던 것이다.
호감을 가지고 있던 로빈의 집에 갔을 때 한 인격체로서 존중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가족을 보면서 나는 로빈과 결혼해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내 모습을 꿈꾸기도 했다. 우리는 두 번 관계를 가졌다. 그런데 상급생 무도회가 있던 날 밤에 로빈과 나는 함께 미사에 참석했다. 그날 신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혼전 관계는 갖지 말 것과 서로를 존경해야 하는 이유를 주제로 강론했다.
미사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로빈이 내게 말했다.
"만일 네가 안 된다고 거절했더라면 나는 휠씬 더 너를 사랑할 수 있었을 거야."
그가 자신이 원했던 일을 두고 나를 탓하고 있는 것에 놀랐지만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로빈은 결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집을 떠나 간호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집안이 몹시 가난한 토미라는 학생과 사랑에 빠졌다. 나는 그에게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는 법과 옷 입는 법, 그리고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는 내가 무척이나 갈구하던 애정을 선물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나의 부모님에게 세례와 견진의 대부모가 되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부모님은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며 기꺼이 응해주었다.
그러나 토미가 나를 대하는 방식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헤어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릴 즈음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침마다 구역질이 나는데다 해야 할 공부는 잔뜩 쌓여 있어 하루하루가 정말 끔찍스러웠다.
그러나 토미는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기뻐하면서 마치 여자에게 수태시킨 최초의 남자라도 된 듯이 행동했다. 그러더니 우리 부모님이 자신의 세례와 견진을 축하해주는 자리에서 불쑥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하이디는 임신을 했고, 그래서 저희는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가 화를 내며 펄펄 뛰는 동안 나는 그저 목을 움츠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네가 지금까지 해온 짓이라고는 나에게 창피를 안겨주는 일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모범적으로 살라고 너를 가르쳤건만 넌 고의적으로 나를 거역하는 짓만 골라 하고 있어... ..."
부모님은 울며 겨자 먹기로 결혼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결혼 날짜까지 잡혔지만 나는 기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혼인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 나는 아무래도 사랑하지 않는 토미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심을 토미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당장 돌아서서 수천 마일 먼 곳으로 떠나가버렸다. 그 덕분에 나는 혼자서 아버지의 분노를 떠안아야 했다.
"하이디, 넌 우리 얼굴에 먹칠을 하기로 작정을 했냐? 우린 너 때문에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으니 앞으로는 절대 집이나 본당에 얼씬거리지도 말아라."
나는 식구들이 원하는 대로 했다. 다른 성당을 찾아가 홀로 앉아 있곤 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새학기가 시작되었는데도 아버지는 돈을 보내주지 않았다. 나는 당장 식생활에 곤란을 느껴야 했으나 다행히 학교에서 일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의 행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같은 과 동료들이 학교 당국에 탄원을 해 나의 아르바이트를 방해하려 했다. 물론 학교측은 이같은 요구를 묵살했지만 배신당했다는 느낌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드디어 딸을 낳아 리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병원의 규칙을 어기면서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5일 동안 지낼 수 있었다. 이윽고 사회복지회로 아기를 건네주었다. 두 번 다시 딸을 만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신부가 나를 찾아와 고백을 듣고 성체를 배령해주었다. 그는 내 머리에 손을 얻고 "사랑하는 하느님, 아무쪼록 하이디가 이 시련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소서." 하고 기도했다. 신부의 이같은 도움은 나에게 힘을 주었으며, 비록 가족에게까지 버림을 받았어도 하느님은 나를 잊지 않으신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그렇지만 아기를 잃은 아픔은 쉽게 아물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했다.
그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새로운 남자와 데이트를 시작했다. 폴은 친절하고 다정했다. 꽃을 선물하고 고급 식당으로 데려가는 등 나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우연히 옛 친구 짐을 만난 뒤로는 폴보다 그에게 더 기울어졌다. 폴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했던 날 밤, 슬퍼하는 그를 위로해준다고 술을 마신 후 나는 그에게 끌려가 함께 밤을 보냈다.
5주일이 지나자 임신의 기미가 나타났다. 너무 기가 막혔다. 내 잘못이었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긴 했지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누를 수가 없었다. 같은 방 친구는 낙태를 권했다.
나는 간호학도였다. 그래서 낙태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면서도 이 사실이 학교나 부모님께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폴을 사랑하지 않았고, 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다급한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나는 결심을 하고 폴에게 말했다.
"낙태를 하려는데 반반씩 비용을 대야겠어."
그는 펄쩍 뛰며 애원까지 했다.
"제발 그런 짓은 하지 마. 이건 내 첫 번째 아기야. 제발 하이디, 난 널 사랑해, 너와 결혼하고 싶어."
그러나 나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병원에 함께 가주었다.
나는 낙태수술을 받기 전에 먼저 정신과 의사부터 만나야 했다. 그가 물었다.
"아가씨가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모두 검토해보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겁니까?"
"그래요. 아기나 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니까요."
나는 임신 사실을 알리고 또 한번 아기 엄마가 됨으로써 내게 퍼부어질 가족이나 동료들의 배척을 도저히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아기를 남의 손에서 자라게 하기보다는 없애는 것이 더 낫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수술대 위에 누웠다. '이제 잠깐만 참으면 모든 것이 원상 복구될 거야.' 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어쩌다가 눈을 뜬 순간 의사의 손에 들려 있는 흡입기에 온통 피가 묻어 있고 가늘디가는 두 다리가 끼여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나는 비명이 터져나오는 것을 겨우 눌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친구 집으로 가서 그 주말을 술과 신경안정제로 지내며 나를 안정시키려 했으나 마음은 갈가리 찢겨 내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다음주에 나는 고해성사를 보았다. 사제는 냉정했다.
"낙태할 짓을 절대 하지 말아요. 지금부터는 사람들이 낙태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힘을 쓰면서 보속을 하도록 하세요."
그는 심장을 도려내는 것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내 심정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전혀 용서받지 못했다는 느낌 속에 무거운 마음을 안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폴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서는 "난 자살할 테다. 네가 저지른 짓 때문에 더 이상 살아 있을 수 없어." 하고 말했다.
그가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얼른 경찰에 그 사실을 알렸다. 다행이 그는 자살 미수로 끝났고 덕분에 하룻밤을 정신병동에 갇혀 지내야 했다. 한 달이 지난 뒤 그에게서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넌 나를 망쳤어. 나는 세상의 여자들에게 복수해줄 거야."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폴은 나와 만날 때만 해도 착하고 예의바르고 친절하고 동정심 많고 깨끗한 남자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처신하기가 갈수록 힘들어 졌다. 나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졸업하던 해는 체중이 40파운드나 늘었다. 간호사가 되기 전 실습시간을 나는 신생아실에서 일해야 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짐과도 만날 시간이 없었다. 바쁜 것이 내게는 오히려 다행이었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내가 낙태를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일곤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고통만 안겨줄 뿐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순회진료 간호사 자리를 얻어 지방을 순회하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움직이는 아가씨가 세명있었는데, 그들은 정숙하지 못했다. 나도 그들과 어울려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다 보니 흡입기에 끼여 있던 가느다란 두 다리에 대한 아픈 기억은 많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포르노 잡지를 읽고, 불법 비디오를 보았으며 양심을 잠재우기 위해 술과 쾌락의 생활로 더욱 빠져들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는 정말 가엾게도 나를 가치있는 존재로 여겨주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지만, 사귀는 남자들 중에는 나의 이런 소망을 조금이나마 채워줄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너무나 외로워하자 아가씨들 가운데 하나가 사촌오빠라는 대니를 나에게 소개시켜주었으나 그 역시 훌륭한 인격자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정말로 착하고 도덕적인 남자 에릭을 만났다. 우리는 여러 시간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도중에 그는 하느님이 나를 소중히 여기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했다.
"나를 말예요? 이제까지 저지른 일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분은 당신을 사랑하고 그래서 당신을 위해 죽기까지 하셨지요.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해요."
에릭은 끝으로 대니가 나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무렵에 나는 이미 아기를 갖고 있었다. 대니 내놓은 해결책은 낙태였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그런 짓을 되풀이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아기를 남에게 주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유일하게 택할 수 있는 길은 나 혼자서 키우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래도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서 온 답장은 짤막했다.
하이디, 우리는 네가 어머니 노릇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만 네가 아기를 낳아서 기르겠다면 너 혼자 알아서 하도록 해라. 우리 집은 너와 네 자식이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아버지의 편지에서는 칼날이 번득이고 있는 듯했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나는 백방으로 도움과 의견을 구한 끝에 친절한 앙드레 신부의 도움으로 공개적인 입양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아기를 길러줄 부모를 엄마 자신이 선정하고 그후로도 아기를 찾아 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입양방식이었다.
나는 분만실로 들어갔다. 아기의 새 엄마 아빠가 도리 넬과 로저 부부가 같이 있어주었다. 넬은 분명히 착한 엄마 노릇을 잘 해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벌목 일을 한다는 로저는 턱수염이 덥수룩하고 떡 벌어진 가슴이 인상적이었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벤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우리는 사흘을 같이 지냈다. 그리고 또다시 때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복지회직원이 리사를 받아 안고 영원히 내 앞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 때와는 달리 벤은 앞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모두 내 방에 모였다. 로저와 넬, 그들의 두 딸, 교회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친구, 앙드레 신부, 벤, 나 그리고 심지어 어머니까지 자리를 같이 했다.
어머니는 나와 친구와 함께 '내 집으로 오라'와 '사랑의 선물'을 노래할 때 흐느껴 울었다. 이 의식은 앙드레 신부님의 주례를 맡았다.
"로저와 넬, 두 분은 벤을 자녀로 삼아 하느님에 대 한 믿음과 사랑으로 양육하겠습니까?"
"네."
이어서 앙드레 신부님은 벤을 안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하이디, 그대는 벤을 사랑하기에 그 아이를 새로운 부모에게 온전히 맡기겠습니까?"
나는 아기의 손과 잘생긴 얼굴, 부드러운 입술을 바라보았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네."라고 대답한 나는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맛보면서 벤을 새 부모에게 넘겨주었다.
벤을 키스와 함께 보내고 난 다음 나는 오래도록 정신을 잃고 지냈다. 그러다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나는 분명히 바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두 사람과 동시에 사귀면서 애정과 가치를 추구했다. 그러나 얻는 것은 내가 이용당하고 멸시받는 여자라는 느낌뿐이었다. 나는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이런 감정은 직장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더 큰 부담만 안겨줄 따름이었다.
그런던 어느날 밤 나는 절망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과거에 떠나보낸 아기들과 입에 올리기조차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배반당했던 순간들, 어린 시절 기도와 피정에 참석하고 하느님께 가까워지고 싶어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 하느님, 저를 도와주세요.' 이것은 하나의 절규요 탄원이요 그리움이었다.
내게 다시없이 필요한 시기에 하느님은 훌륭한 사람 셋을 내 삶 속으로 인도해주셨다. 순회 간호사 일을 하면서 나는 '마르타의 정원'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거기에서 한 부부와 사제를 만나게 되었다. 사랑이 많은 이 세 사람은 나를 소중한 인격체로 대해주었고 나를 자기들의 영적인 생활에 동참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내가 잘못을 저질러도 나를 비난하거나 멸시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에릭이 나에게 깨닫게 해주려고 무진 애를 썼던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곤 했다. 그것은 내가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인격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성모님의 발현으로 갑자기 유명해진 메주고예(Medjugorje)에 갈 수 있었다. 아직 성모님 발현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지만 많은 이들이 성모님의 전해주심을 청하기 위해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산꼭대기로 오르며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 간청해보고 싶었다.
그러자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 기도를 드렸다.
'성모님, 저를 온전히 예수님께 맡기도록 도와주십시오.'
그 다음에 일어난 일들은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남자친구를 만나면 으레 밤을 함께 보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지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의지적으로 강해져서라기보다 주변의 상황이 그럴 수 없도록 방해하곤 했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친구들이 들이닥쳐 남자를 데려가거나 폭풍이 불어닥치거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많은 밤을 홀로 보내면서 하느님이 내 인생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하느님이 내 양심을 일깨우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소도시로 가서 순회 진료를 하다가 식품점에서 일하는 진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 사랑을 느꼈고 잠자리를 함께했다. 이틀 후에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난 우리가 한 일을 두고 하는님과 밤새 씨름을 벌였어. 그리고 결혼 전까지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어. 그러니 우리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얌전히 지내자. 어젯밤처럼 하느님과 씨름하는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죄라고? 내가 진에게 죄를 범하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도대체 진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나는 내 사랑을 온전히 표현 한 것뿐이고, 나 자신은 그로 인해 죄를 지었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러나 내 양심도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얌전한 젊은이들로 행동을 조심했다.
진이 나와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을 느꼈다. 그러나 어느 주말에 진은 낚시여행을 떠났고 그 이후로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었다. 나는 또 불행의 구덩이로 던져진 느낌이었으나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찾은 곳은 교회였다.
나는 미사 때 봉사하는 성가대와 은사기도 모임에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나날을 보냈다. 어느날 아주 놀라운 일이 생겼다. 하루는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거기에 나온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날 나와 함께 기도드릴 사람으로 정해진 여자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것은 형편없이 살던 그녀가 어떻게 해서 신심 깊은 여성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이었는데, 내게는 그 이야기가 아주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녀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내가 정숙할 수 있었던 것은 남자 쪽에서 안 된다고 거절할 힘이 있을 때뿐이었어요."라고 이야기하자 그녀는 내 손을 힘있게 잡아주었다.
"당신은 주님을 슬프게 해드린 거예요.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인데 그런 죄는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지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이곳으로 부르셨어요. 다시 태어나게 해주시고 사랑으로 치유해주시기 위한 거예요."
그녀의 말은 진리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힘이 넘치고 있었다. 그녀 덕분에 나도 정결한 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을 변화시켜 줄 선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은사기도 모임에 나가면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떠받들어 주었다. 그들은 늘 배척만 당해왔던 보잘것없는 여자 하이디를 위해 많은 기도를 바쳐주었다.
그럼에도 낙태에 따른 고통과 상실감은 가슴 밑바닥에 늘 깔려 있었다. 나의 양심을 그토록 완벽하게 마비시켰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나는 낙태 사실을 어떻게 대면해야 좋을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메리 프랜시스 수녀를 만났다. 우리는 피정 때 함께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녀가 "내 눈에 칼의 형상이 보여요."하더니 한참 말이 없다가 "혹시 이것이 당신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건 아닌가요?" 하고 물었다.
그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한 번 낙태한 적이 있어요." 나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고해성사를 받았지만 용서받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러자 그녀는 다정한 목소리로 하느님의 자비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녀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때, 나는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용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 안에 숨어 있는 죄책감은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너무나도 많은 죄, 그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저지른 일들을 거짓없이 들여다본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수녀님은 이렇게 기도했다.
"영원하신 아버지, 당신의 자비로 하이디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녀의 마음을 짓이기고 있는 이 고통에서 구해주소서."
이윽고 나는 하느님께서 아기의 생명을 빼앗은 나를 이미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흘릴 수 있는 눈물이란 눈물은 남김없이 모두 쏟아내기라도 할 듯이 울었다.
"죽은 그 아기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나요?" 하고 수녀님이 물었다.
"아뇨."
우리는 아기에게 알렉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알렉시스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 아기를 예수님의 품으로 넘겨드렸다. 지금은 일곱 살이 다 된 알렉시스가 예수님의 마리아 사이에 자리잡고 서 있는 것을 보는 듯했다.
"엄마, 엄마를 사랑해요. 나는 엄마를 용서하겠어요. 예수님께서도 엄마를 용서하실 거예요."
눈물로 블라우스 앞자락이 흥건히 젖었다.
"나도 널 사랑한단다, 아가야. 정말 미안하구나."
그 일이 있은 후에 나는 오래도록 남자와 사귀지 않은 채 혼자 지냈다. 그러다가 마이클을 만났다. 마이클은 내가 바라던 남자로서 나를 정숙한 생활로 이끌어주었다.
그와 함께 지내면서 나는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이클이 정결한 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미사참여와 고해성사, 기도 덕분이었던 것이다. 나도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나는 과거를 치유하는 일에도 주력했다. 우선 아버지와 오빠들을 용서했다. 그리고 내가 저지른 온갖 난잡한 행실, 내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일을 용서해주시도록 하느님께 간청했다. 나도 자유로이 정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벤(공개적으로 입양시킨 아들)을 만나보는 것도 내게 큰 위로와 힘을 주었다. 아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평안했다.
벤을 만나도 돌아오는 길에 아는 '성체 성당'에 들러 조배를 드리곤 했다. 거기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자비로운 '현존'을 느끼게 해주셨고,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넘치도록 느끼게 해주셨다. 그분이 나에게 쏟아부으신 사랑은 너무나 엄청나 마음으로 받아 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기쁨과 평화로 충만되어 정결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꾸준히 도전하겠다는 각오로 살아간다. 미사와 성체성사, 고해성사, 기도, 유익한 상담, 그 모든 것을 통해 이제 나의 양심은 활발하게 살아 있으며 치유의 여정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