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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위령탑(성모님의포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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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 : 하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친 나 - 패시 필즈.mp3

 

하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친 나 - 패시 필즈

 

내가 어떻게 해서 레스에게 걸려들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는 자유분방한 미술학도였고 나는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가 땅딸막하고 통통한 데 반해서 나는 호리호리했다. 그는 스포츠를 좋아했는데, 당시만 해도 나는 그것을 시간 낭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빠졌고, 사랑이 무르익어 가면서 나는 자신이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그와 함께 나누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개월이 지난 다음 우리는 잠자리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는 늘 콘돔을 사용했고 임신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본 족은 없었으나 나는 필을 복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신부인과를 찾아갔더니 의사가 나를 진찰하고 나서 물었다.

"이 달 들어 월경이 늦어지고 있지요?"

"그래요, 하지만 불과 며칠인걸요."

"그 동안 젖가슴에 통증이 오지 않던가요?"

"사실은 1주일 전부터 신경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어요."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가씨는 벌써 임신을 했고, 이 시점에선 필을 복용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요. 결혼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내 말이 맞나요?"

나는 그 말을 수긍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스럽게도 내가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한번도 임신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의사에게 결혼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말했을 때 그는 간단하게 대꾸했다.

"그래요, 걱정할 것 없어요. 낙태가 이제는 합법화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하기로 하지요, 뭐."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볼 여유도 없었지만, 기도 같은 것을 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나는 그 의사의 제안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뱃속에 있는 것이 아기라는 사실을 단호하게 부정해버렸다. 나는 대기실로 나와 레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의사가 임신했대. 그렇지만 의사가 낙태 할 수 있도록 해준댔어. 걱정 안 해도 돼."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함게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도 입을 다물었다.

낙태 일자는 금요일로 잡혔다. 그런데 그 전날 나는 갑자기 학생회관으로 달려가서 신부님을 찾아 빈 강당으로 끌고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 전 이번에 낙태를 했는데 그 일로 고백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때 내 머릿속에는 죄를 짓기 전에 미리 고백성사를 받아두는 것이 대단히 현명한 조치라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갔던 것이다.

신부는 나의 고백을 듣고는 "당신은 잘못을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되도록 그 일을 잊고 삶에 정진하도록 하십시오." 하고 사죄경을 염해주었다. 보속을 하라고 했지만 어려운 것도 아니었으므로 나는 순진하게도 내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을 스스로 치워냈다고 믿었다.

나는 다섯 남매 가운데 맏이였으므로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데 익숙한 편이었다. 나는 어떤 상황이라도 혼자 책임을 졌고, 어머니에게 기댈 생각 같은 것은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믿음 밑바닥에는 어머니가 나보다는 동생들에게 훨씬 마음을 쓴다는 불만이 깔려 있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아무튼 나는 어머니가 내게도 관심을 쏟아주길 간절히 원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지만, 침대에 누워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나를 좀더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곤했다. 내가 몸을 양팔로 껴안은 채로 잠을 자면 아기가 어머니를 껴안은 모습과 비슷해서, 어머니가 그걸 보고 내가 아기였을 때를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스스로 완벽하게 함으로써 어머니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연히 그러다 보니 나는 스스로 결단을 내려 나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고, 어머니의 시간을 빼앗지 않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어느날 나는 친구 문제로 눈물을 글썽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어머니는 나를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아니면 그냥 기분이 울적해서 그러니?"

나는 어머니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어머니를 성가시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아무 일 없었어요."하고 대답해버렸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성장기 내내 나의 전형적인 행동 양식으로 굳어졌다. '모든 문제점을 없는 것으로 부인해라. 스스로 책임지라, 완벽하게 보여라. 그러면 사람들이 널 좋아할 것이다.'

나의 신체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점을 든다면 긴 금발과 푸른 눈, 그리고 날씬한 몸매였다. 나는 대체로 내가 원할 때 데이트를 즐겼다. 신앙 면에서는 70년대 초 보통 수준에 해당하는 가톨릭 신자로 주일마다 미사에 참석했고, 간간이 고해실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삶 속에서 주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없었고 관심도 없어서 성서가 집 안 어디에 꽂혀 있는지도 몰랐으며, 기도생활이란 아예 없었다.

열아홉 살에 삶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뜻에서 낙태 일정을 잡아놓은 나였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낙태는 잘못된 것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나는 또한 완벽해지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나는 간단히 실상을 외면하는 방법으로 이런 상반된 모순을 어물쩍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나는 꽤나 후미진 진료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침상에 묶인 채 아흔일곱까지 숫자를 세다가 의식을 잃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땐 간호사가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혼미한 의식으로 간호사에게 물었다.

"다음 월경은 언제 시작되나요?"

"지금은 아무 걱정도 말아요. 모든 게 잘될 테니까요."

그로부터 몇 시간 후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는 아픔도, 후회도, 심지어는 안도감도 없었다. 왜냐하면 여전히 그것이 아기였을 리가 없다고 철저하게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게는 다음 월경이 언제 시작되는지 그것만이 궁금했다. 그렇게 여러 주일이 흘러갔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던 월경은 없이 그 대신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레스와 나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돌 때까지 관계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임신 가능성은 없었다. 나는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한번 진찰을 받았다. 그런데 임신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너무나 당황하여 지난번 수술했던 산부인과에게 전화를 걸었다.

"패시 머피예요. 낙태수술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임신이라니 어떻게 된 일이에요?"

"지금 곧바로 이쪽으로 오는 게 좋겠어요."

나는 그 의사를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데 또다시 그에게 진찰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임신중인 게 확실하군요. 전번에 분명히 태아조직을 때어냈는데... 아기의 일부분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그는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낙태시술을 다시 하기에는 시일이 너무 오래 되었으니, 태아가 좀더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생리 식염수를 주사하는 것이 좋겠어요."

'아기의 일부분이라니!' 참으로 끔찍스런 말이었다. 도대체 어떤 부위가 남아 있다는 건지 의아스러웠다. 그 동안 레스는 내내 내 곁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우리의 관계가 끝나는 시간은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의료 문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압박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넉 달째 접어들 무렵 여동생이 의심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언니는 확실히 배가 나오고 있어."

나는 웃어넘기면서 "네 말이 맞아. 아무래도 음식을 조절해야겠어." 하고 얼버무렸다.

여동생은 또 내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는 것을 보고 "여자가 임신을 하면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했는데..."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에도 내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비듬 때문에 그럴 거야." 하고 웃어넘겼다.

나중에 사제가 되었지만 그 당싱 가장 흉허물없이 지내던 마이크도 내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너 많이 아픈 사람 같다. 내가 도와줄 일은 없니?"

그의 말에도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내 짐을 혼자 떠맡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마이크, 넌 정말 훌륭한 기사(騎士)야. 하지만 나는 멀쩡해. 기말시험 보는 것말고는."

기말시험이 끝나자 나는 예의 그 후미진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나에게 생리 식염수를 주사했다.

"안심하세요. 혹시 통증이 있거든 말해요."

"그렇게 커다란 주사기를 내 배에다 찔러대는데 어떻게 아프지 않겠어요?"

"내 말은 심하게 아플 때를 말하는 겁니다. 통증이 심하면 내가 엉뚱한 부위에다 주사를 놓은 것이 되니까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몸이 움찔했다.

생리 식염수를 주사하면 24시간에서 48시간 안에 진통이 온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사는 또다시 자궁에다 주사를 놓았다. "뱃속에 무엇이 들었건 간에 이만하면 확실히 죽었을 겁니다.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의 말대로 기다렸다. 지옥 같은 나흘을 죽치고 앉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자신의 심각한 처지를 애써 부인하고 있었다. 그때 드디어 진통이 왔고 그리하여 '아기의 일부'를 분만할 수 있었다.

아파트에 돌아온 이틀 뒤 가슴이 부어올랐다. 젖, 그것은 내가 존재를 지워버린 한 아기가 먹기로 되어 있던 양식이었다. 나는 맥이 빠지고 답답해서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담?' 어느새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처음으로 낙태 사실을 고백했던 신부를 찾아갔다. 그에게 첫 번째 고백의 진상과 그후에 일어난 일을 말하는 동안 나는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신부는 나를 꾸짖지 않았다. 처음에 해주었던 충고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제는 그대의 삶을 살아가도록 해요. 당신은 이미 용서받았으니까."

주님이 나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은총 그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간단히 낙태를 권하는 의사의 제의를 수락했던 것처럼, 나는 사제를 통해 전달되는 주님의 용서를 또한 거리낌없이 받아들였다.

삶은 계속되기 마련이지만 한결같이 변함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대학을 마치고 지방에 있는 병원 실험실에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큰 키에 가무잡잡하고 비교적 학구파인 젊은 인턴 앤디 필즈를 만났다. 그는 가톨릭 신자였으며, 우리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는 3개월을 사귀고 나서 사랑에 빠졌고, 앤디가 청혼하기에 이르렀다.

결혼한 지 2년 되었을 때 나는 현관에서 그를 맞이하며 기쁜 소식을 알렸다. "여보,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요? 나, 임신했어요." 앤디도 무적이나 좋아했다. 그러나 10주가 지날 무렵 허벅지로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하면서 몸에 경련까지 일었다. 그 순간 나는 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유산된 것이고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하느님이 내게 벌을 내리신 것이다.

나는 유산하고 나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기가 여자애였다면 이름을 리사라고 지었을 거예요."

"아주 좋은 이름이로구나. 다음에 아기에 아기를 낳으면 그 이름을 붙이지 그러니?"

"아녜요, 엄마. 이건 그 아기를 위해 지은 이름이었다구요."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 아기'의 이름을 다른 아기에게는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얼른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내 마음 깊은 곳에 고통의 물줄기로 흐르고 있는 낙태를 사실로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또다시 임신했다. 이번에는 6개월 정도 지나자 하혈이 비쳐 병원으로 달려가 진찰한 결과 전치태반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래서 하느님이 또 한 차례 유산으로 나를 벌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기가 발길질하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아기가 완벽하게 제 모습을 갖추었음을 알았다. 나는 하느님께 '제발 아기를 살려주십시오.' 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혼신을 다해 아기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9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정성스런 간호를 받은 덕분에 임신기간을 무사히 채우고 분만실에 들어가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우리는 아기의 이름을 패트릭으로 지었다.

그런데 기겁할 일은 출산한 지 13개월밖에 되지 않은 내가 또다시 임신했다는 사실이었다. 임신은 어느 때보다 수월했지만 정선적으로는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왜냐하면 전에 낙태했던 아기의 경우처럼 예정에 없던 임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불안하고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면 안절부절못했는데, 혹시 과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닐까 하고 지난날을 되짚어보았으나 원인을 알 수는 없었다. 단지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볼품없는 인간처럼 느껴져 너무나 싫었다.

린다가 태어나자 나는 아기를 돌보는 것조차 싫었다. 게다가 산후 우울증에 걸려버렸다.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보살피면서도 쳐다보기가 싫어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되니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과 정신적혼란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런 감정을 앤디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외면적으로는 늘 '완벽한 사람'이었고 매사를 훌륭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앤디와 패트릭과 린다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면서, 그러나 내 안에서는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훌륭한' 가톨릭 신자였다. 주말마다 거의 빠짐없이 미사에 참석했고, 혹시라도 미사에 참석하지 못하면 중요한 일을 빼먹었다 싶어 마음이 걸렸다. 그러나 교회 일에 뛰어들지는 않았고, 실제로 공동체 의식도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주위에는 성숙한 가톨릭 신자들이 많았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앤디가 운영하는 병원의 환자들로서 우리에게 꾼준히 좋은 자극을 주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줄곧 듣고 있던 이야기는 본당 내의 쇄신모임소식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참석하자면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과 일요일을 몽땅 바쳐야 했고, 나는 이런 희생을 하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내게는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일컬어 '쇄신'이라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명칭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일정이 잡힐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도 참석하라고 성화를 부리곤 했다. 그래서 끝내는 앤디에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 광신자들을 떨쳐버려야겠어요. 걱정 말아요.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를 교회에서 보내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했다가는 지쳐서 쓰러지고 말 거예요."

그러나 주님은 내가 발길질을 하고 비명을 질러대도 나에게 회심할 기회를 마련해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계셨다. 결국쇄신모임에 참석했고, 그 모임은 가톨릭인이 누릴 수 있는 참된 기쁨을 내 마음속에 일깨워주었다. 나는 본당 공동체와 성서, 기도, 그리고 가톨릭 신자의 신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모임에 참석하는 동안 시간이 정신 없이 지나가버려 밤마다 11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서는 흥분을 누를 수 없어 앤디를 깨워놓고 그날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 주말에는 비단 영적 쇄신으로 끝나지 않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쇄신모임을 주도하는 이들이 나에게서 새로운 일면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받은 은총의 선물과 재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내가 받은 영적 선물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것은 다름아닌 조직력이었고, 본당 사무진은 재빨리 그 분야를 내게 맡겨주었다.

이렇게 해서 정말 기쁨이 넘치는 생활이 여러 해 이어졌다. 나는 자신이 사랑스러워졌고 주님도 사랑했으며, 본당 활동은 내 자아를 받쳐주는 지주가 되어주었다. 딸아이와는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아이를 수용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런 중에도 간간이 슬픔이 밀려오는 순간 - 더없이 고통스런 순간 - 이 여전히 있었지만 나는 그 원인을 생각하기 보다 회피하는 방법으로 그 순간을 버텨내곤 했다. 계속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던 고해 사제의 말을 되새기면서.

본당에 친구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낙태 사실을 감출 필요성이 그만큼 커졌다. 내가 끔찍스런 대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던 어느 사순절이었다. 낙태한 지 13년이 지난 시접을 주님은 내가 은밀하게 감추어둔 비극과 맞대면해야 할 때로 정하셨던 것이다. 그때 나와 앤디는 성체 분배 봉사자로서 미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윽고 사제가 죄를 주제로 강론을 시작했다. 그는 아그이 없는 사소한 거짓말에서 낙태와 살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죄를 조목조목 들추어냈다.

사제가 입을 열 때마다 나라는 '훌륭한' 가톨릭인이 지난날 저질렀던 죄상이 하나하나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때 내 기분은 우물가에서 예수로부터 자신이 범한 죄를 낱낱이 지적받던 사마리아 여인이 느꼈음직한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그 자리를 끄고 싶었다. 내 죄가 연도를 드릴 때처럼 줄줄이 이어지니 당황하여 그곳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는 심경이었다.

'하느님, 저분의 입을 막아주소서.' 나는 이렇게 기도드렸지만 사제의 강론은 계속되었다. 나는 정신이 너무나 혼란스러워 성체 분배 봉사도 영성체도 허둥지둥 해버리면서 '나 같은 죄인 이 그리스도의 몸을 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안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위선자도 있을까.

미사 끝나고 제의방을 치운 다음 신부와 함께 캄캄한 주차장을 가로질러 강당을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신부에게 말했다. "오늘 강론은 한마디로 나를 뭉개놓더군요.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몰라요."

물론 신부는 내가 왜 속이 상했는지 알 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꾸했다.

"글쎄요, 패시. 하지만 아까 말한 그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바로 기쁜 소식 아니겠어요, 안 그래요?"

나는 다시 한번 고백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임신했을 때 진심으로 염려해주던 마이크가 우리집에서 한 시간 반쯤 걸리는 작은 도시의 본당신부로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자동차를 몰고 그를 찾아갔다. 나는 펑펑 울면서 고백을 함으로써 이제까지 저지근 온갖 죄를 떨쳐버렸다.

이렇게 고백하고 나자 평화가 거대한 물결처럼 밀려들면서 사랑과 용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야말로 내가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믿었다.

그러나 2주일이 지나자 낙태 때문에 두통과 번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난 일기를 펼쳐보면서 내가 '낙태'라는 낱말을 아직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번민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때서야 나는 온전히 치유되려면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으므로 마이크를 찾아가 일기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울면서 말했다.

"마이크, 내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끔찍하기에 내가 아직도 거부하는 걸까? 제발 그 방법을 가르쳐줘."

"패시, 널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알 수가 없군."

그의 말을 듣자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에게서 모든 해답을 구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나의 비밀을 함께 나누면서 상처를 봉합하는 대책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하느님, 나를 도울 수 있는 분은 당신뿐이로군요.'

그후 나는 본당 회합 석상에서 치유를 주제로 하는 성서 구절을 봉독하자고 제의했다. 그러자 본당의 젊은 보좌신부가 나를 한켠으로 데려가더니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성서는 영적 치유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가운데는 심리적으로 치유받아야 할 필요성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내가 여러 해 지켜 본 바로는 당신은 과거에 무슨 일인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그런 일 말입니다."

그가 이처럼 힘든 때를 용케 잡아서 말을 꺼냈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라왔다. 만약 그가 조금만 먼저 내 속을 털어놓도록 유도했더라면 나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얼마전까지는 내게 치료받아야 할 사안이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혼연한 마음으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는 정신과 의사를 추천해 주었다.

그러나 막상 약속도 하기가 어려웠다. 이것은 내딛기가 너무나도 힘든 걸음이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면 내가 생각하기조차 싫은 과거 속의 한 조각까지 샅샅이 들춰낼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나는 '낙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나는 아기 하나를 죽였노라고 큰소리로 말해야 한다. 나처럼 완벽해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정신과 희사에게 전화를 해라.', '오늘은 안 돼.', '해야 해.', '안 돼.', '지금 전화해.', '난 못해.'

내가 거실을 왔다갔다하며 끊임없이 싸우고 있을 때 마침 딸이 거실에서 '오즈의 마법사'를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도로시와 허수아비가 겁쟁이 사자를 어떻게든 오즈로 데려가려고 애를 쓰는 반면에 겁쟁이 사자는 가지 않으려고 온갖 핑계를 다 늘어놓고 있었다. 이윽고 도로시와 허수아비가 말했다.

"나 참, 간다고 해서 잃을 건 아무것도 없잖아? 넌 나빠지려고 해도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잖아."

그 말은 크게 내 마음에 와닿았다. '잃을 건 아무것도 없잖아?' 나는 그 즉시 전화기로 달려가서 전화를 걸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나에게도 나빠질 것이 없을 만큼 그 순간은 최악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틀 후에 나는 의사를 만나 낙태했던 사실과 거기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치유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었고 의사는 나에게 낙태앴던 당시를 글로 쓸 것을 당부했다. 그건 나무나 끔찍스런 일이었다. 나는 낙태한 이후로 두 번 다시 그 문제를 떠올리지만 않으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사실 나의 심리상태를 검진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싶지 않은 악몽과 같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낙태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한사코 두려워하던 나롤서는 이런 자아대면(自我對面)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때까지도 나는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인정하는 걸 주저하고 있었다.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을 동안 본당신부가 다른 일 때문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의 첫마디는 "잘 지냅니까?" 였다.

"물론 잘 지내죠."

"그렇다면 좋지요.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지요?"

나는 속으로 '전혀 잘 지내지 못할 만큼 문제가 있어요, 더군다나 내가 얼마나 야비하게 구는지 당신이 안다면...' 하려다가 그만두고 "그래요.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패시, 바깥은 날씨가 너무나도 아름답소. 나가서 구경 좀 하세요."

나는 시쿵둥하게 "그러지요."하고 대꾸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창밖을 내다보니 이른봄 날씨가 그렇게 화사 할 수 없었다. 나는 바깥경치를 바라보며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하느님, 오늘만은 낙태 문제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렵니다. 나는 오늘 그냥 놀겠어요. 제발 그 일을 오늘만 대신 맡아주시면, 약속드리지만 내일은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겁니다.'

그날은 짐을 일단 하느님에게 떠넘겼다. 그러고 나니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세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잔디를 깎다가 창가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패트릭을 보는 순간 그 애가 어렸을 때 알레르기성 체질이라는 것도 모르고 정원 그네에 앉혀둔 채 잔디를 깎던 일이 생각났다. 그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아이에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그러자 어떤 빚이 번쩍 스치는 것같았다. '나는 늘 과거에 잡혀서 여전히 그때의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건 아닐까?' 지금의 나는 분명 낙태수술을 받던 그 당시의 내가 아니다. 따라서 일을 저지르던 기준으로 지금의 나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런일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너무 오랫동안 과거로부터 도피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마침내 열아홉 살에 했던 일을 직시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낙태를 마음속 깊이 감춰둘 필요가 없었다.

드디어 나는 정신과 의사가 당부한 숙제를 할 수 있었다. 이 느낌은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어서, 나는 이제 낙태로 인한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으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내가 성장을 계속하고 본당 일에도 열심히 뛰고 있는 동안 나의 내부에서는 1대 1 차원에서 누군가를 도와주라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너에게 개인저인 도움을 청하러 올 사람이 어딨어?' 너는 그저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

어느날은 또 다른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패시, 넌 여성들이 낙태와 그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그 생각을 얼른 머리에 털어내버렸다. 나는 그때까지도 사람들이 나의 비밀, 죄많은 과거를 알까 봐 무척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 나 같은 과거를 가진 사람이 지도층 위치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 새로운 부르심을 철회하지 않고 나를 꾸준히 부추기고 계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이 이야기를 가까운 친구 사제에게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는 다짜고짜로 물었다. "그래서 패시는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나는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그 답변을 찾기 위해 내 마음속을 깊숙이 들여다보아야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해답을 찾았다. 내가 진실로 바라는 건 한 여성이 낙태로 말미암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집에 와서 나는 주님과 거래를 했다.

"주님, 만일 당신이 세부적인 일들만 책임져주신다면 저는 기쁘게 봉사하겠습니다. 우선 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하나만 보내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마음을 추스른 나는 '낙태-이후' 카운슬링 문제를 주제로 밀워키에서 열리는 전국회의에 참석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본당신부에게 그곳에 가겠노라고 하자 신부는 "휴지를 잔뜩 싸들고 가도록 하세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흘려 들었다. 나는 훌쩍거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낙태 후유증에서 치유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당에서 아침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그 동안 사귀게 된 한 여성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받은 부르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가 불쑥 이런 말을 한느 것이었다.

"패시, 당신이 알다시피 난 혼인성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고백성사도 받을 수 없는 입장이에요. 하지만 몇 년 전에 낙태수술을 한 사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요. 그 문제를 해소하고 싶은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요."

내가 하느님에게 보내 달라고 청했던 여성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그뒤에 나는 내가 주님과 했던 거래며 그분이 나를 그쪽으로 인도하신 내력을 다른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패시, 난28년 전에 낙태수술을 받았어요. 그리고 바로 어제 내가 생전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했던 거예요." 그녀 역시 자신의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주님께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만 부탁드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나의 새로운 사도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럭저럭 낙태-이후 치유를 주제로 하는 회합에 나갈 시간이 되었다. 나는 출발에 앞서 주교관에 들러 주교님께 현재의 일을 소상하게 말씀드리고 교구 안에서 '라헬 사업'을 어떻게 시작했으면 좋을지 내 생각을 전달했다. 그분은 나에게 작은 '기적의 메달'을 주었고, 나는 줄을 살 틈이 없어 옷깃에 핀으로 꽂았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사목 방법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회의장으로 향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자신을 위해서는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한 첫날밤 '낙태-이후' 문제로 모인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던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낙태할 당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내 몸 속에 진짜 아기가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그녀는 무척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게 정말이에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가 내 말을 믿지 못하는 얼굴을 했으므로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나같이 말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 거군요?"

"사실 한번도 없었어요."

그녀의 답변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나는 회의 첫날을 거의 울면서 보냈다. 그것은 나에게 아직도 치유해야 할 대목이 남아 있고, 그래서 앞으로도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아직 완전히 치유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 대해 자신에게 느끼는 실망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완벽해지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면 어디선가 상처를 덧내기 마련임을 예증하는 또 하나의 예에 불과 했다.

나는 큼직한 휴지 한 통을 집어 들고 몇 구역 떨어진 성당으로 걸어갔다. 누가 보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내가 분노하고 있다는 걸 하느님도 알아야 하느까. '당신은 다른 사람을 도와줄 방법을 배우게 한답시고 나를 밀워키로 꾀어냈지만, 알고 보니 당신의 진짜 속셈은 나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덧나게 하는 데 있었어요. 나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꾸며 두 여성을 보낸 것은 정말 치사한 사기예요. 덕분에 나는 이 새로운 사목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착각했으니까요.'

성당에서 기도하는 동안 나는 내가 성스럽게 떠받들어온 것들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용서만 빼고 나머지는 모조리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사목과 모든 치유까지도, 그래서 나는 중얼거렸다. "당신을 위한 일에 다시는 나서지 않겠어요."

이렇듯 화풀이를 하는 가운데서도 나는 계속해서 주님에게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제발 내가 걸어온 길 속에서 치유에 필요한 부분이 있거든 분명하게 알려주십시오. 나는 지금 완전히 길을 잃고 해매고 있지만 그래도 이토록 크나큰 고통 속에 머물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정말 불안했다. '제발 주님, 내가 이 상태를 벗어나도록 도우시고 나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내 눈을 열어주시고 해야 할 일이 남았으면 그걸 가르쳐주십시오.'

다음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비통하다.'는 낱말이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나는 가까운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 먼 기억 속에 감춰져 있던 나의 소중한 딸 리사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동안 낙태 문제로 내가 흘린 눈물은 시냇물을 이루고도 남을 만큼 많았다. 그러나 정작 리사를 위해 눈물을 흘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즈음 그 모음에서는 잃어버린 아기 - 낙태로 잃었거나 유산으로 잃었거나 간에 -를 위한 추도식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서명하라고 했다. 이 일이야말로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때 나는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니 올라갈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추도식은 다음날 4시 반으로 잡혀 있었다. 나는 그날 온종일 진짜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처럼 슬픔속에서 보냈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런대로 침착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슬픔은 나만의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너지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사람은 결코 무너지는 법이 없다!

추도식장에 도착하자 분홍색 리본을 맨 작은 헝겊인형을 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은 인형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그 인형을 품에 꼭 껴안았다. 물론 그렇게 한 것은 불과 몇 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작은 리사와 더 깊은 사랑과 인연으로 끈끈하게 맺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주교님이 주신 메달을 치마 안쪽에다 달아주었다. - 내가 그 애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다. - 주교님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이제 나는 두 번 다시 그런 끔찍스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주님께 죽은 아기들을 봉헌하는 의식이 거행되자 나는 아쉬움을 달래며 작은 관 속에 아기를 뉘었다.

 

나는 천국에 가서 그애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그 애를 그리워한다. 나는 생명을 마음대로 잘라냄으로써 잃게 된 딸을 위해 슬퍼함으로써 마침내 치유받은 것이다. 그리고 어쩐지 사이가 부자연스럽던 나의 딸 린다와도 화해하여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다.

 

* 편집자 주 : 패시 필즈는 자기 교구에서 '라헬 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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